벌써 두 명의 여성이 죽었다
-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2023년을 맞은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두 명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건수만 집계한 숫자인데요. 분노스럽게도 두 사건의 여성살해사건은 피해자가 신고한 후 마땅히 작동했어야 할 국가 제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기에 발생했습니다.
🔥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폭력을 방치한 경찰
- 1월 2일에 발생한 여성살해사건(기사로 자세히 살펴보기)은 전 남편이 가해자였습니다. 가해자는 지난해 8월, 폭력 행사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후 피해자는 지난 12월 20일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였으나 경찰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12 시스템 등록 조치만 했을 뿐, 추가적인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해요. 가정폭력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은 폭력의 심각성이 중대하다는 명백한 증거였음에도 경찰은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은 것이죠.
* 112 시스템 등록 조치: 112치안종합상황실에서 운영하는 112시스템에 ‘안전조치 대상자’ 정보(주거지, 직장지, 스마트워치 포함 연락처, 사진, 안전조치 신청사유 등)와 가해자 정보(대상자가 알려준 정보)를 사전에 입력해 긴급신고체계를 구축하고 신속 출동하는 제도
- 1월 4일에는 남편에 의해 또 다른 여성이 살해당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역시 지난달에 가정폭력 신고를 했는데요. 이때에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분리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기사로 자세히 살펴보기).
🔥 경찰의 의무는 무엇인가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르면 가정폭력범죄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현장에 나가서 폭력행위를 제지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도록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경찰은 심각한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피해자 보호조차도 피해자에게 판단하도록 떠넘겼습니다.
🔥 위험한 상황인데도 왜 피해자의 의사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나요?
‘가정의 평화와 안정’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우선시되는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 조항 때문인데요. 법이 이미 파괴된 가정임에도 피, 가해자가 함께 있는 가정의 형태를 ‘회복’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가정폭력사건에서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가정폭력 기소율은 10.1%(검찰청, 2020)에 불과한 것이 현실입니다.
🔥 피해자는 왜 가해자를 처벌하겠다고 결정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가정폭력 피해자는 신고하더라도 보복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이유, 자녀 양육 문제, 가정을 해체시킨 장본인이라는 사회적 비난 등 복합적인 이유로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고소하더라도 중도에 취하하고 억지로 합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가정폭력 기소율이 매우 낮은 현실 속에서 피해자는 공권력이 개입해도 소용없다는 ‘경험’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폭력 해결의 책임을 자처하게 되기도 합니다.
🔥 가해자 처벌은 피해자가 ‘선택’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져야 할 책임입니다.
국가는 이러한 특성을 모두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의사 존중’을 단순하게 판단하여 국가의 책무인 가해자 처벌을 피해자가 ‘선택’하게 하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차도 방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선택’하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가해자 처벌 과정을 밟아나가야만 합니다.
🔥 여성살해 사건을 막기 위해 필요한 가정폭력처벌법 전면 개정
가정폭력으로 인한 여성살해 사건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가정폭력처벌법의 전면 개정이 필요합니다.
-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 및 전반의 패러다임을 ‘가정의 평화와 안정’이 아닌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 보장’을 중심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 가정폭력범죄의 처벌을 상담을 받게 하거나 사회봉사·수강명령 등에 그치는 *보호처분이 아닌 형사처벌을 원칙으로 규율하여 명확한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 보호처분: 사회봉사·수강명령, 보호관찰 등 처벌이 아닌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여러 조치
- 가정폭력처벌법 내 ‘피해자 의사 존중’과 관련한 내용을 삭제하고, 국가 스스로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사망한 여성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에 깊은 조의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처벌법 전면 개정을 위해 끝까지 활동하겠습니다. |